할머니 손에 자라난 손자
우리집은 어렷을적 부터 가난하게 자라왔다.
가난한 덕분에 아버지와 어머니 맞벌이 부부로 어렷을적 나는 어머니의 손에 자라난게 아니라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난 어머니와의 추억이 거의없다.
지금 나는 아버지, 어머니 라고 호칭하는데,
내가 20살때쯔음부터 이렇게 호칭하게 된거 같다.
30대 중반이 된 내 주변 친구들은 아니.. 심지어 우리 큰고모가 60대인데도 아직도 “엄마, 엄마” 하면서 할머니를 부른다.
하지만 난 쉽사리 엄마, 아빠 라는 말을 못하겠다.
이런 호칭은 뭔가 말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되게 부자연스럽고 거북해진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추억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되려 할머니한테는 존댓말을 못쓰겠다.
“할미, 어제 내가 여기다 둔거 못봤어?”
“할미, 나 배고파. 밥 있어?”
이게 집에오면 내가 할머니랑 대화하는 방식이다.
누가보면 “저런 호로새끼” 라고 손가락 질하고 욕해도 충분히 욕먹을만 하다.
할미를 왜 자꾸 속여, 말해봐. 너 요즘 어디가?
난 지금 노가다 일 한지 슬슬 두달이 다 되가는 무렵이다.
하지만 난 아직도 가족에게 내가 이런일을 하고 있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그냥 대충 넌지시 힘든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뿐..
요즘 따라 할머니가 자꾸 내방에 들어와서,
“요즘 너 어디가?”
라고 자꾸 캐묻는다.
나는 신경안쓴채 「그냥 놀러가」 「친구랑 약속있어서 나가」 「친구가 잠깐만 도와달라고해서 가」 등의 답변으로 대충 얼버무린다.
몇번 그러다 보니
“할미를 왜 자꾸 속여, 말해봐. 너 요즘 어디가?”
“아 그냥 나갔다오는거야 신경꺼”
“근데 왜 나갔다오면 옷이 왜 더럽고, 찢어지고.. 너 힘쓰는거 해? 물건 날르고 그러는거 하는겨?”
“몰라, 나 지금 중요한일 하니까 나가봐.”
난 쌀쌀맞게 군다.
사회생활 후 처음으로 서럽게 펑펑 울다
개발자로 일을 하고있을때 였다.
나는 한참 프로젝트 진행 도중이라 토요일 일요일 주말없이 일한지 두달이 다되갈쯤이였다.
평소 같으면 주말에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일요일 점심이나 저녁은 동생, 할머니, 나 이렇게 셋이 꼭 외식을 하곤 했었는데, 일 때문에 그런 여유도 없었다.
집에서 컴퓨터로 일하고 있을때, 할머니가 걱정이 돼서 인지 내 방문 열고
“일이 그렇게 바뻐?”
라는 물음에 고개 돌려 얼굴도 안쳐다보고
“어, 왜?”
라며 신경도 안쓴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니여, 그래. 일해.
…. 과일 깍아..”
“아, 됐어됐어. 나 지금 바뻐.”
내가 집중을 해서 그런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후 되돌이켜 보니 내가 좀 많이 무심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두운 방안의 푹처지고 힘없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프로젝트 중간발표가 있는 날, 깜빡하고 집에서 작업한 내용을 회사에 안가져와, 허락을 받고 급히 점심시간에 빠져나와 USB메모리를 들고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점심시간에 문여는 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놀란 기색으로
“누구야? 어, 뭔일이야? 회사 안갔어?”
나는 들을 시간도 없이 재빨리 내 컴퓨터에 전원 넣고 USB메모리에 복사해서 방을 빠져나왔다.
“무슨일이야? 왜 집에 온거야?”
“아~ 나 빠뻐!”
짜증을 내고 신발을 신고 문닫고 집을 나설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어두운 방안의 푹처지고 힘없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문 닫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목이 타고, 침을 꾹 삼키면서 애써 참아보려고 했는데도, 되려 감정만 북받쳐 올라 콧물 질질 흘리면서 손으로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서 일을 해야 하지?
사람 없는 버스안에 뒷좌석에 앉아, USB 메모리 쥐어잡고 서럽게 울었다.
‘씨발, 대채 내가 왜이렇게 까지 해서 일을해야 하지?’
생각하니 너무 서러워지면서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많이 주나?
나중에 잘될거란 보장이 있나?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 회사에서 뭔가 인정을 받기라도 하나?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그렇게 대단한건가?’
막막한 현실에 세상 한탄에 원망까지 별별 생각 다하다 보니 가슴이 메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게 흔히 말하는 루져들의 마인드 인거 같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니까 모든게 다 남탓으로 보이고, 모든게 다 원망스럽다.
이때 개발자 한걸 처음으로 후회한거 같다.
할머니는 어떤 무엇과도 바꿀수 없어
이 프로젝트로 인해, 할머니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았으며, 내가 할머니에게 얼마나 잘못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프로젝트 끝나자 마자 할머니와 추억을 만들려고, 연차내서 할머니와 둘이서 일본여행 다녀왔다.
할머니가 먹고 싶어하는 일본 음식도 먹어보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온천도 1박2일로 다녀오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할머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 후에도 할머니와 산책도 가고, 외식도 더 자주 가게 되었다.
할머니가 좋으면 나도 좋다.
어렷을때는 할머니가 날 보살펴주고 키웠지만, 「이제 내가 모시지 않으면 안되겠다. 」 아니 「내 옆에 있지 않으면 안되겠다 」는 생각이든다.
도저히 할머니한테는 말 못하겠다
이런 할머니 한테 내가 노가다 한다는 말을 차마 못꺼내겠다.
뭐든지 잘라대는 그라인더, 몸에 안좋은 시멘트, 위험한 아시바, 무거운 석재,목재 등…
요즘은 그냥 일 다녀온다고 말하지만,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과 목소리로
“다녀와, 조심하고.”
하며 마중 나간다.
아마도 어느정도 힘든일은 할거라 알아챘을거라 생각한다.
“일은 할만해?”
“아니 때려치울라고”
라고 농담식으로 말하면,
“그려, 쉬어”
라고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전에 회사 다닐때는 때려친다고 장난 하면, 욕했었는데. ㅎㅎ
이런 할머니한테는 지금 내 일은 말할수 없는 비밀이다.
기술자 되어 할머니를 즐겁게 만들어 드려야지
타일 기술자가 되는것은 내가 행복해지기 뿐만은 아니다.
내가 기술을 배우는걸 어렷을적 부터 원했던 할머니는,
비록 지금은 시멘트 나르고 타일 나르고 하는거 때문에 기쁨보다는 걱정과 슬픔이 앞서겠지만,
내가 기술자가 되어 자리 잡고 잘되는 모습 보여드리면 분명 행복해 하실거다.
그때까지 이렇게 밝고 항상 옆에서 같이 웃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ㅊㄱㅎ
•8년 ago
너무 보기 좋네요
이미 당신은 효자십니다
저도 바리스타로 일하다
님과 동향의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기공 빨리 되실듯 해요
늘 안전제일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세요~~^^
blog-admin
•8년 ago
감사합니다.
ㅊㄱㅎ 님도 새로운 일에 잘 적응하실 거라 믿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Aaron Park
•8년 ago
저랑 똑같은 생각이라 댓글다네요… 왜 이렇게 까지 해서 일을 해야 하지? 라는말.
행복을 위해 사는건데… 그렇다고 돈을 많이번것도 아니고… 너무 희생적인 성격이라 걱정이 될정도로 효자시네요. 포스팅 잘봤습니다.
blog-admin
•8년 ago
다들 그렇게 생각해도 참아가면서 살아가는거 같습니다.
저는 지금이나마 저런생각 안하고 즐겁게 일할수 있는거 같아 행복합니다.^^
Grace
•7년 ago
저도 잘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타일일 배워보려 검색하던도중에 들러봤어요. 정말 멋지십니다~!
나이 40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후~ 잘할수 있겠죠? 항상 화이팅입니다~!
blog-admin
•7년 ago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곤 하는데,
50대 분들도 시작하시는분들도 있고,
40대분들은 말할것 없이 많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셔서 기공으로 일하시는분들 많이 계시고요.
걱정 하실필요 없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시면서 더한것도 많이 겪어보셧을꺼라 생각되니까요 ^^
해보면 별거 아닙니다. ^^
Grace
•7년 ago
답글 고맙습니다. ^,^
앞으로 체력좀 키워야 키워놔야겠어요..
흐….
유지석
•7년 ago
참 멋지십니다^^
요즘 출근길에 글읽는맛으로 출근합니다 ㅎㅎ
blog-admin
•7년 ago
감사합니다.
제 포스트가 유지석님에게 조금이나마 재미를 주었다면 기쁩니다.
내일 출근길도 힘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
정정
•4년 ago
노가다 시리즈 첫번째부터 천천히 읽고 있어요 이번 편 공감되서 찡하고 눈물 고이네요 ..ㅜㅜ. 현재는 가정의 행복과 함께하며 (힘드시겟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계신가요? 앞부분 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 같아서요.. 에세이라고 할 수있갯는 이 일지들 매력적이여서 계속 읽게됩니다 본인 소중한 일상들 공유해주셔서 고마워요♡
blog-admin
•4년 ago
별볼것 없는 이야기거리가 무언가 정정님에게 소소한 재미를 드린거 같아 기쁩니다.
지금은 이당시와는 다르게 현장을 맡아 타일시공을 하거나 지원을 가거나 합니다.
저때는 다소 힘들어도 배우는 보람을 느꼇다면,
최근에는 견적및 클라이언트와의 소통및 작업중간의 예외상황때문에 힘들지만,
결과물에 만족하시는 클라이언트를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애용
•3년 ago
23살 아직 한참 어린동생입니다.
필름과 경량 주변 지인들 일 알바로 이래 저래 하다보니 인테리어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껴 찾아보다 블로그까지 들어오게되었네요 새벽에 쭈욱 읽어보다 이번편에서 너무 멋지시고 본받고싶다는 느낌이들어 댓글 하나 남겨봅니다 ㅎ 쭉 다읽고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blog-admin
•3년 ago
별 볼일 없는 포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애용님에게 무언가 도움이 된거 같아 기쁩니다.
말씀대로 아직 한참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찍 인테리어쪽에 흥미를 느끼신편 같습니다.
이런일 저런일 직업에 귀천도 없고,
환경에따라 되려 사무직보다 현장직이 더 각광받는 경우도 있는거 같습니다.
아직 어리시니 이런저런 직업들 많이 봐보고 고려 해보시고 정해보시는거도 좋을거 같습니다.